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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사이, 적과 한집에 산다는 것
관계는 때로 전쟁터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면 적과 아군의 경계가 흐려지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순간부터 은밀한 심리전이 시작된다. 최근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를 다시 보며 적과의 동거가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달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전처가 아이의 친엄마라는 사실을 숨기고 베이비시터로 위장해 현처의 집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여기에 두 후배의 30년 넘는 결혼 생활에서 나온 ‘측은지심이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더하면, 적과 아군이 어떻게 뒤바뀌는지 생생하게 드러난다. 아래 표에서 핵심 키워드를 먼저 정리해보았다.
| 핵심 키워드 | 내용 요약 |
|---|---|
| 사랑과 전쟁 | 감정의 이중성 – 사랑이 전쟁으로, 미움이 다시 연민으로 바뀌는 과정 |
| 적과의 동거 | 같은 공간에서 숨겨진 목적을 가진 인물과 살아갈 때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 |
| 전처 vs 현처 | 법적 지위와 감정적 유대가 충돌하는 복잡한 관계망 |
| 측은지심 | ‘딱하다’는 감정이 미운 정이 되어 관계를 묶어두는 현상 |
드라마 속 위험한 동거, 현실에서는 더 섬뜩하다
드라마 속 전처는 돈을 받고 아이와 남편, 집까지 모두 포기해야 했다. 시어머니는 병든 아버지의 수술비를 미끼로 며느리를 내쫓았고,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몇 년 후, 우연히 마트에서 아이와 전남편을 다시 만난 전처는 이미 새 아내가 있는 현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베이비시터 면접을 통해 다시 그 집에 들어가는데, 놀라운 점은 자신이 친엄마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엄마 노릇을 하는 데 만족하는 듯 보였지만, 점차 현처에게 이간질을 시작한다. 아이에게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가 잘 놀아주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고, 현처의 친정에서 보내준 아기 옷을 찢어놓기까지 했다. 입덧이 심한 현처에게 유산 위험이 있는 음식을 주는 장면은 극한의 적대감을 보여준다. 결국 현처는 직장 동료의 가족사진 공모전과 전처의 블로그를 통해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남편에게 “당신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냐”고 다그친다. 이 장면은 시청자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솔직히 나라면 둘 다 보기 싫었을 것 같다. 친자식처럼 키운 아이의 생모가 모든 사실을 숨기고 내 집에서 함께 살았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시작부터 남편이 진실했거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드라마 에피소드는 2000년대 초반 방영된 KBS의 <사랑과 전쟁> 중 하나로, 실제 법정 상담 사례를 각색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시청률이 높았던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인 갈등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재혼 가정에서 전처와 현처 사이의 갈등은 상담 건수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문제다 (출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2023년 상담 통계). 특히 아이가 개입된 경우 감정적 대립이 더 심각해진다. 드라마에서처럼 전처가 양육권을 포기하고도 아이를 포기하지 못해 위장 취업하는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현실에서도 은근히 존재하는 패턴이다.
30년 동거가 만든 ‘측은지심’이라는 함정
드라마 속 극단적 상황과 달리, 현실의 ‘적과의 동거’는 훨씬 미묘하고 오래간다. 두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0년 넘게 ‘적군’과 함께 산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딱하다’는 감정을 말한다. 한 후배는 남편이 일찍 들어와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저 인간도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미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후배는 아이들이 다 분가한 뒤 남편이 갑자기 아군인 척 다가와 같은 편인 척 구는 모습이 어처구니없지만, 그래도 ‘아군 하라지 뭐’라고 체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다. 측은지심은 과연 사랑일까? 한자어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부부 관계에서는 미운 정보다 더 위험한 끈으로 작용한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이 관계를 질질 끌게 만든다. 마치 드라마 전처가 남편의 무기력함을 이용해 집에 남아 있던 것처럼, 현실의 아내들도 ‘딱한’ 남편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의 연구에 따르면, 오래된 부부 관계에서 ‘경멸’과 ‘연민’은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특히 연민은 상대방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보호 대상으로 보게 만들어 관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출처: Gottman, J. M. (2015). The Seven Principles for Making Marriage Work). 적과의 동거에서 측은지심을 느끼는 순간, 이미 전쟁에서 패배를 받아들인 셈이다. 후배들이 말하는 ‘토끼띠 남편’에 대한 분노와 애증은 그런 점에서 보편적이다. 토끼해에 토끼가 뭇매를 맞는다는 농담 속에는 수십 년 쌓인 서운함이 녹아 있다.
적군도 아군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 밥은 먹어야 한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전쟁을 하든 평화 협상 중이든, 인간은 밥을 먹어야 한다. 최근 광화문 D타워 3층에 위치한 ‘석씨네 1인 밥상’에서 두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가짜 꽃과 가짜 잎으로 장식된 공간이지만, 음식은 진짜였다. 송화 버섯 솥밥과 완도 활전복 솥밥을 주문했는데, 달래장에 비벼 감태에 싸 먹으니 꽤 맛있었다. 점심 시간 11시에 미리 자리를 잡지 않으면 선점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다. 디너 메뉴는 돼지 돌판 구이 세트가 푸짐하게 나온다고 한다. 각자 나온 귤 사이즈가 하도 달라서 한참 웃었다. 이렇게 먹고 웃는 순간에는 적과 아군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후배 중 한 명이 “사실 남편도 딱하기는 한데, 밥은 잘 차려줘야지”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웃으면서도 공감했다. 관계의 전쟁에서 진정한 평화는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데 있지 않다. 그냥 매일 밥을 함께 먹고, 가끔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점심 후 맞은편 건물의 커피빈에서 커피를 마셨다. 평소 산미 있는 싱글 오리진 커피에 익숙해져서인지, 브랜드 커피가 쓰고 진하게 느껴졌다. ‘낯설다’는 느낌이 오히려 신선했다. 30년간 적군과 동거하면서 길들여진 맛도, 때로는 다른 공간에서의 한 잔으로 리셋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 전처도, 후배들의 남편도, 그리고 나 자신도 모두 어떤 관계에 길들여져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길들여짐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측은지심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인지 구분하는 일이다.
적과의 동거, 당신의 선택은?
사랑과 전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전처는 아이를 향한 사랑 때문에 적진으로 뛰어들었고, 현처는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두 사람 모두 사랑 때문에 전쟁을 벌인 셈이다. 후배들은 30년 넘게 ‘딱하다’는 감정 하나로 버텨왔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익숙함의 이름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적과의 동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왜 여기에 머물고 있는지 모르는 나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것을. 드라마의 결말처럼 모든 진실이 드러난 후에도 현처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랑이 전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려면 최소한의 정직과 경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오늘 밥을 먹고, 내일도 밥을 먹으며, 가끔은 적군이 아군이 되기도 한다. 그게 어쩌면 관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