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던 원동천주교공동묘지 입구에 섰습니다. 낮은 야산을 따라 조성된 묘지에는 이름도 없이 잠든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오래된 비석 하나가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비석의 마모된 글자를 더듬다 보니 어느덧 참나무 아래로 내려앉은 그림자와 마주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 가문의 오래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이 묘지에 오면 우리는 단순히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신앙을 지키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의 흔적이 전해집니다. 그 가운데 김정윤 박사 가문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 표를 보면 김정윤 박사 가문이 남긴 다양한 흔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구분 | 주요 내용 |
|---|---|
| 인물 | 김명복, 김경실, 김정윤 |
| 신앙 | 충절효행, 숭조상문, 성실근면 |
| 독립운동 | 등잔불 아래 청년들이 글을 익히고 시대를 읽는 안목을 키움 |
| 공동체 활동 | 강길지 집사가 매일 정오 타종을 맡아 마을 시간을 맞춤 |
| 독립운동 방식 | 여러 사람이 조금씩 돈을 모아 자금을 마련 |
| 현대 활동 | 김정윤 박사는 지하구조물 기술 개발과 씨름 협회 활동 |
낯선 묘지에서 만난 김정윤 박사 가문
그의 집안은 3대에 걸쳐 충절과 효행, 성실을 가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등잔불 아래에서 글을 익히고 시대를 읽는 안목을 키우던 종가댁 건너방은 어둠 속을 밝히는 등대와 같았습니다. 특히 강길지 집사는 타종을 맡아 매일 정오가 되면 청아한 종소리를 온 동네에 퍼뜨렸는데, 이는 곧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맞추는 동시에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작은 실천이 쌓여 큰 역사가 되었음을 이 묘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등잔불 아래 피어난 독립운동의 씨앗
그러나 이 가문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독립운동에 기여한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거액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조금씩 돈을 모아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신문과 인쇄물을 복제하고 나누는 일은 곧 식민 권력의 정보 통제를 거부하는 일이었습니다. 등잔불 아래에서 시작된 지식의 씨앗이 어떻게 폭력적인 시대를 견디게 했는지, 이 이야기는 지금에도 충분한 울림을 줍니다.
독립은 정치적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가문은 신앙과 학문, 체육이라는 다양한 분야를 통해 민족의 얼을 지켰습니다. 김정윤 박사는 대한씨름협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텄고, 토목공학자로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썼습니다. 한 인물의 업적보다 그를 있게 한 가문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묘지 앞에서 되새기는 오늘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합니다. 한 번은 생물학적 생명이 끝날 때, 또 한 번은 그것을 기억할 사람이 없어질 때입니다. 원동천주교공동묘지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잊히지 않는 기억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세월은 흘렀어도 영웅의 이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 묘지의 돌담과 오래된 나무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가을바람이 묘지 사이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저는 김정윤 박사 가문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오래된 묘지 한켠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남깁니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지루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기회가 된다면 이곳을 찾아 오래된 비석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마무리하며
이번에 살펴본 원동천주교공동묘지는 단순한 안식처가 아니라, 한 가문의 신앙과 독립운동, 기술과 체육 정신이 응축된 역사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표창장과 상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기억했는가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묘지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우리가 직접 나서서 기록하고 전해야겠습니다. 오늘도 묘지의 잔잔한 바람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