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차기 교황 선출을 앞두고 전 세계 가톨릭계의 이목이 로마에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가 공개한 12명의 교황 후보군에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포함되면서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죠. 한국 천주교 사상 처음으로 교황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유흥식 추기경의 프로필을 꼼꼼히 살펴보며 그가 왜 주목받는 인물인지 알아볼게요.
| 항목 | 내용 |
|---|---|
| 생년월일 | 1951년 11월 17일 (만 74세) |
| 출생지 | 충청남도 논산시 (기계 유씨) |
| 현직 | 추기경,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
| 주요 이력 | 한국인 4번째 추기경, 교황청 차관보급 최초 임명, 콘클라베 참석 두 번째 한국인 |
| 특이사항 | 서울대교구장 출신이 아닌 최초 추기경, 진보 성향 사회 활동 |
목차
기본 프로필과 성장 과정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 대건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16세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입교한 케이스로 주목받습니다. 이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1979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으며 본격적인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죠. 1983년에는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깊이도 쌓았습니다.
사제품과 초기 사목 활동
사제 서품 후 유흥식 신부는 대전교구에서 다양한 보직을 맡으며 교구 내 입지를 다졌습니다.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교구 사목국장 등을 역임했고,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까지 지내며 교육과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어요. 특히 1990년대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당시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인의 진보적 신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유 추기경 개인도 사찰 대상이 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초기 경력은 그가 단순한 성직자를 넘어 사회 정의와 평화를 중시하는 목회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어요. 실제로 그는 뒤늦게 신앙을 받아들인 만큼 교회 내에서도 폭넓은 시각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대전교구장 시절과 사회 활동
2003년 6월, 유흥식 신부는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고, 2005년 4월 대전교구장직을 승계하며 4대 교구장으로 착좌했습니다. 이후 무려 16년 동안 대전교구를 이끌며 교구 발전에 헌신했어요.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4년 방한 당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 주교 회의에서 교황과 40분간 독대하는 ‘뚝심’을 보여주며 교황의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진보적 리더십과 사회 이슈 참여
유 추기경은 진보 성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사제선언문에 서명한 5명의 주교 중 한 명이었죠.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방문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였습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 위원장을 맡아 북한을 네 차례 방문했는데, 씨감자 무균 종자 배양 시설 축복식, 평화 봉사소 축복식 등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국내외에서 그를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 평가하게 만든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특히 한반도 분단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은 바티칸에서도 높이 샀다고 해요.
교황청 진출과 추기경 서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임명, 한국인 최초
2021년 6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흥식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지명하고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했습니다. 이는 한국인 사상 최초로 교황청에서 차관보급 이상의 고위직을 맡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어요. 당시 교황청 성직자성은 전 세계 40만 명이 넘는 사제들을 관리하는 핵심 부서였는데, 유 추기경이 그 수장이 된 것은 그의 능력과 교황의 신뢰를 방증합니다. 2022년 6월에는 부서 명칭이 성직자부로 변경되어 공식 직책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같은 해 5월 29일 추기경에 임명된 유흥식 주교는 8월 27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공식 서임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는데, 이는 현직이 교황의 부제 격인 교황청 부서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김수환,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이 탄생했으며, 서울대교구장을 역임하지 않은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습니다.
2024년 4월 11일에는 바티칸시국위원회 위원에 추가 임명되며 바티칸 내 영향력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바티칸 시국의 행정과 입법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로, 유 추기경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차기 교황 후보 가능성과 국제적 평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1일 선종한 이후,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 일정이 빠르게 잡히고 있습니다. 오는 5월 5일에서 10일 사이에 첫 투표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12명의 유력 후보를 발표했고 그중 유흥식 추기경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매체는 유 추기경을 “남북한 화해와 평화의 대화를 모색한 인물”로 소개하며, 포콜라레 운동의 일원으로서 평화 증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유 추기경의 강점과 과제
유 추기경이 교황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임을 받아 교황청 핵심 요직을 맡아온 점. 둘째, 아시아인 최초 교황으로서 비서구권 교회의 상징성을 지닌 점. 셋째, 사회적 약자와 평화 문제에 대한 진보적 리더십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1978년 김수환 추기경 이후 47년 만에 한국인이 콘클라베에 참석하게 되면서 한국 교회는 물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과제도 있습니다. 교황 선출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현재 약 120여 명)이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유 추기경은 2022년에야 추기경에 서임되어 추기경단 내 서열이 높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보수파의 반발을 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변화를 원하는 추기경들이 비서구권 교황을 원한다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당시에도 남미 출신이라는 점이 큰 변수였던 만큼, 유 추기경의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유퀴즈온더블럭 출연과 대중의 관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56회(방송일은 확인 중)에 유흥식 추기경이 출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렸습니다. 유재석과 조세호 앞에서 특유의 부드러운 화법과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어요.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서임 과정, 바티칸 생활, 그리고 교황으로서의 소신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는데, 특히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방송 이후 유 추기경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각종 포털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하기도 했어요. 한국인 최초 교황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죠. 유 추기경은 2025년 3월 21일 영상 담화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의 빠른 결정을 촉구하는 등 여전히 한국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리하며: 유흥식 추기경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충남 논산의 한 소년이 로마에서 사제가 되고, 대전교구장을 거쳐 교황청 장관이 되기까지 유흥식 추기경의 여정은 가히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여러 ‘최초’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해 꾸준히 실천해 온 진정한 목회자로서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2026년 6월 지금, 콘클라베를 앞두고 유 추기경의 이름이 차기 교황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의 이력과 리더십,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어받을 적임자라는 평가가 세계 교회 안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교황 선출은 신앙과 정치,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얽힌 과정이므로 쉽사리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교회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그리고 과연 한국인 최초 교황이 탄생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네요. 만약 그가 교황에 선출된다면, 한반도 평화와 아시아 교회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바티칸의 비밀 회의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걸요?





